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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님이 돌아오다

  • No : 23601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8-11-11 00:12:51

그 님이 돌아오다

 

정라곤(시인)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 님 벗님 어찌 하리.” 광복절 노래가사이다. 이 노래를 배웠던 때가 아마 초등학교 때 음악시간이었는데 가사에서 보듯 다시 빛을 보는 것처럼 흥이 나는 노래였다.

 

우리가 매양 겪는 인간사에서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닥치지만 굴곡진 세월을 겪다보면, 흙을 다시 만져보고 싶을 정도나 바닷물이 춤을 춘다고 생각할 만큼 흥겨운 일은 점점 줄어든다. 개인적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감동받기가 밋밋한 세상 탓이기 아닌가 여겨진다.

 

늘상 행복하기만 하고 매사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으랴.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가운데 죽이 맞는 내편의 사람들과 부지런히 친분을 가진대도 흉허물이 쌓이고 더러는 오해가 생긴다. 한마디로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인데, 무조건 상대방의 입장을 받아주면서 두루 사는 법을 익힘이 오히려 편한 세상에서는 배짱과 소신이란 애당초 없어야 할 덕목일까?

 

요사이 며칠간 비가 오락가락했다. 맑았다가 갑자기 흐려지는가 하면 벼락치고 천둥도 울리고 여름 날씨치고는 이상했다. 국토면적이 좁은 나라이건만 한곳에서는 무더위에 시달리고 다른 지역에서는 물난리를 만났다고 아우성이다. 잔뜩 흐려있는 날씨에 출근하려 엘레베이트를 기다리는데 전화기 진동이 울렸다. 받아보니 참으로 반가운 목소리였다.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이후 오랫동안 마음앓이 하던 일상의 늪에서, 궂은 날의 을씨년스런 풍경이나 잘못 먹은 음식처럼 더부룩한 느낌의 불쾌함을 단방에 날려 보낸 전화상으로 음성의 만남이었으니… 그것은 마치 잔뜩 찌푸린 날에 먹구름 사이로 갑자기 짱 하고 퍼지는 햇살 같기도 하고, 그것은 기분을 느끼하게 하고서 뱃속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찌꺼기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한 상쾌함이었다.

 

나는 이 순간에도 위로할 말을 준비해본다. 말이 떠오르지 않고 다만 몇 년 전 겨울, 죽변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보다 더 잉잉거리던 대나무들의 모습을, 그가 지나다니며 무수히 보았을 봉평리 뒷동산에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던 참꽃의 기억들을 영혼 속에 아름답게 덧칠하고서 다시금 치열한 삶에서 종전처럼 자신감과 생동감을 얻기를 기원한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 현실에서 그 님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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